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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07, 13, 14, 15 January, 2017

by 꽃딱지 2017.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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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January, 2017

오늘은 얼마 전에 같은 병원에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영국인 남자애를 알게되어서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한 날이다. 둘 다 병원 근처에서 사는지라 병원 앞에서 만나서 번화가로 갔다. 캠브릿지 번화가를 여기저기 걸어다니면서 구경하고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게임을 엄청나게 좋아하나보더라. 게임기가 종류별로 있으면 말 다한거지. 영어로 대화도 나눌 겸 만났는데 취향은 비슷하나 점심먹을 때도 너무 조심스러워 해서 내가 다 불편했다. 나는 그냥 우걱우걱 먹는 스타일인데.. 무튼 오늘 그 아이의 생일이라서 저녁에는 대학친구들을 만나다고해서 저녁에 일찍 헤어졌다. 안그래도 할 말이 점점 떨어가던 찰 나에 어찌나 다행인지. 같은 외국인이래도 같이 있기 편하고 말할 거리가 끊이지 않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성향차이이려나

 

#13 January, 2017

 

인스타그램을 비활성화했다가 다시 활성화로 풀었는데 자고 일어나니깐 왠 좋아요 메세지가 떠있는거 들어가서 확인해봤더니 예전에 3년전에 올려놨던 유안 사진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한꺼번에 눌러준 것이었다. 쭉 보니까 진짜 리얼 유안 맥그리거가 내가 올린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준 것!! 하앍.. 이 것이야 말로 덕계인가.. 나는 성덕이 되어버렸다. 완전 영광영광.. 적어도 내 내 아이디가 내 이름이라서 내 이름과 내 프로필 사진은 봤을걸 생각하니 너무나도 기뻤다. 나의 존재를 이렇게 나마.. 13년 유안 맥그리거 덕질에 빛을 맛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오빠를 직접 보고 사인도 받고 사진도 함께 찍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유안 덕분에 하루 종일 행복한 하루였다

 

#14 January, 2017

 

케이런의 은퇴 파티가 있는 날이다. 큰 이벤트홀을 빌려서 한 쪽엔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서 우리 부서 직원들이 가져온 음식들을 다른 방에 뷔페처럼 쭉 진열해 놓고 먹고, 다른 한 쪽은 스테이지처럼 해서 DJ가 노래를 틀어주면 춤을 추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부서장 할아버지도 모든 사람들도 열심히 잘 노는 분위기. 선곡이 정말 7080스러워서 재미있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던 자리였다. 대부분이 중년의 나이이고 20대는 나랑 크레이그 밖에 없어서. 그런데 크레이그는 영국인이라 그런데 옛날 노래도 곧 잘 아는 듯 싶었다. 나는 1도 모르겠던데. 알만한 노래는 YMCA와 마카레나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마카레나는 초딩 때 이후로 처음 듣는거였다. 오늘 하루 많이도 먹고 구경도 잘 했다.

 

#15 January, 2017

인생을 살면 살 수록 모르겠다. 간호학을 다니면서 계속 고민하고 휴학도 해봤지만 애매한 전공과 고졸의 여자로써는 한국에서 살기가 빡빡해보였다. 그래서 다시 복학을 해서 간호학을 졸업할 무렵에도 엄청난 고민을 했었다. 대학병원 추천서도 교수님께 받아놓고 면접 날에 가지 않았다. 졸업반일 때는 간호사를 안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 때는 DJ일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졸업 뒤에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돈을 부족하지 않게 버는 간호사 일을 결국 선택했다. 간호사 일을 하면서도 참 고민을 했다. 처음 병원에서는 그래도 같은 입사 동기가 있어서 의지가 많이 되었다. 그래도 고된 시간이 계속 되었고 6개월 만에 첫 병원을 때려 치우고 게임 폐인으로 지낸지 어언 6개월, 함께 게임 하던 남자애들은 나에게 그 때 당시 마이너 마니아층들만 보는 게임 방송을 하라고 추천했지만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아서 6개월 게임 폐인 생활을 접고 이대로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철 좀 들자는 마음으로 다시 병원에 입사했다.

간호사 일을 버티기엔 내 성향에 안맞았던 탓인지 그 때 해외 간호사를 목표로 영국으로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1년만 채우고 관둔 뒤,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듣기는 좀 되나 막상 이론적인 문법들은 거의 다 까먹었던 터라 종로에 건강검진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광화문에 영국문화원에서 영어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영국 워홀 비자에 지원을 했고 붙게 되었다. 영국에 초기 정착금도 벌고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동네 전문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다 갚고 돈도 열심히 모았다. 이것저것 모으고 옷사입고 꾸미는걸 좋아하는 나로써는 엄청난 절제가 필요했다. 모든걸 돈을 쓰면서도 영국에 갈 돈을 위해 최대한 아꼈다.

그리고 영국에 왔다. 일을 하기 전에는 런던 여기저기를 탐방하고 돌아다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런던의 카페 알바는 만만치 않았다. 인구 수가 폭발하는 도시인 만큼 런던에서의 외국인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다. 초반에 카페 말고 병원과 여러 회사에 지원했지만 부족했던 영어 실력 때문인지 붙지 못했다.

영국에서 지낸지 10개월만에 캠브릿지 대학병원에서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겼고 운좋게도 NHS의 한 스태프로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병원을 다니고 있지만 타지에서 제대로 의지할 친구, 가족이 하나 없이 지내는건 정말 삶의 질을 떨어뜨림은 물론이거니와 그렇다고 내가 남자친구를 당장 만들어서 지낸다 한들 내 가정 배경 상 남자에게 의존적으로 지낼 수도 없고 그걸로 마음이 편안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29세가 된 2017년. 늦었지만 더 늦어서 후회하기 전에 정말 진로를 바꿔야하는지 아님 영국 간호사에 계속 도전을 해야하는지가 나의 고민이다. 결혼을 하더라하도 요즘 세상에 결혼하고나서 집안 살림만 하는 주부로 사는 것은 절대 무리수고 커리어를 왠만하면 계속 유지를 해야하는데 병원 일은 곧 죽어도 30-40대 넘어서까지는 하기가 싫다. 작년 연말까지 영국간호사 면허증을 따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지만 나의 성격 자체가 병원 일을 할 만한 그릇이 못되는 것을 계속 느끼게 된다.

간호학 박사를 땄던 오빠가 언젠가 말했던 것 같다. 자기는 사람을 좋아해서 병원 일이 잘 맞고 재미 있었다고 그래서 간호학이 재미있다고, 내가 가는 커뮤에도 간호과 진학으로 고민하는 사람의 댓글에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간호학은 맞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을 보고 깨달았다. 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없다. 물론 내 주변 가족, 친한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있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겐 정말 무관심하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병원 환자들, 보호자들이랑 이야기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수술실에서만 일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나에게 맞는걸 찾자면 수술실이 그나마 제일 맞았을테니깐. 이 워홀 비자가 끝나면 영국간호사 면허 따는 일에 집중을 할 것인지. 일단 간호사로 돈을 벌면서 30대의 내 인생을 위해 다른 길을 슬슬 찾으면서 내 인생을 즐길 수 있는게 무엇인지 찾을 것인지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또 다른 2017년의 목표가 생겼는데 보아와 함께 외국인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 한국인이 더 좋긴하지만 노후를 생각하면 한국은 절대로 살만한 곳이 못되고 또 남편 쪽이 외국인이라면 한국과 그 쪽 나라에도 친척들이 생기는 거니까 힘든 점도 물론 많겠지만. 근데 정작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다른 부서의 영국인 남자애는 만나기가 싫다. 그냥 나에게는 무매력인듯. 아무튼 어서 한국으로 들어가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보아랑 목표도 이루고 차근차근이 다시 내 인생을 위해 목표를 재설계해서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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