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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13, 18 November, 2016

by 꽃딱지 2016.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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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November, 2016

 

진영이가 런던에서 캠브릿지로 놀러왔다. Pho에서 베트남 쌀국수도 영국에서 처음 먹어보고 여기저기 캠브릿지 중심거리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캠브릿지는 구경할 곳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3시간도 안되서 구경이 다 끝났구요.. 남은 시간엔 카페들어가서 앞으로의 미래를 의논하며 수다를 떨었다. 이런 류의 수다는 매일 언제나 떨어도 시간이 참 잘가고 질리지도 않는다. 둘 다 잘 되야할텐데.. 결론은 일단 브렉시트로 의료인력 수급이 힘들어질테니 장벽이 낮아질 날을 위해 열심히 아이엘츠를 준비하는 걸로.. 하지만 미국의 트럼프 당선으로 미국진입 장벽이 높아질 것으로 보아 다른 외국 의료인들이 영국이나 (그러나 월급이 작아서 최후의 수단일듯) 다른 나라로 발 길을 돌릴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도 다행인건 그 외국인들도 우리랑 같은 절차를 밟아야하므로 무조건 아이엘츠 빨리 따는게 목표인 것! 힘내자! 지금 인내를 하면 언젠간 내 맘대로 살 날이 오겠지..

 

#18 November, 2016

오늘 내 눈이 얼마나 간사하고 못됐는지를 깨달은 날이다. 이 글은 앞으로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잃어버리지 않기위해 쓰는 평범한 나의 일상 기록이 아닌 일종의 반성문이다.

내가 사는 직원 아파트에는 나 말고 3명이 살고 있다. 인도에서 온 정형외과 아저씨 간호사, 필리핀에서 온 여자, 그리고 싱가폴에서 온 남자. 내가 오늘 기록하고 싶은 것은 싱가폴에서 온 남자이야기다. 처음 봤을 때 되게 일본인처럼 생겨서 (내 기준) 일본인인줄 알았으나 알고보니 싱가폴 사람. 사람도 되게 친절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면서 나중에 같이 나가서 돌아다니자고 하기에 그냥 겉치레로 시간나면 그렇게 하자고 했었다. 저번 달, 우리 부서에 나에게 일어났던 에드문드 사건이 얼마 전 일이라 그런지 나이든 남자는 좀 꺼려지기 시작했던 때라 좀 부담스럽기도 해서 왠만하면 집 안에서 잘 안마주치는 방향으로 지냈었다. 그리고 괜히 느낌에 내가 돌아다닐 때 마주치기도 해서 꺼리짐 하기도 했었다. 예를들어 내가 샤워하고 나올 때, 이 싱가폴 남자가 주방에 들락거리면서 물마시러 나오다가 마주치기도 했던 일도 있었다. 그리고 남자 혼자 살다보니 홀아비 냄새도 나는게 영 꺼림직 했었다. 이건 사실상 내 남동생 방에 들어가면 홀애비 냄새가 난다. 다른 친구들 남동생들도 나는거라 이건 뭐 본인이 관리하기에 따라 달라지는거긴 하지만 괜히 느낌에 싱가폴 남자 이미지가 나에겐 별로 좋지 않았다. 물론 싱가폴 자체는 깔끔하고 발전도 잘 되어있는 곳이라서 늘 여행을 가고싶었던 곳 중에 하나이다.

아무튼 오늘 장을 보고 집에 들어와서 정리를 하려는데 싱가폴 남자가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을 막 나가려는건지 퇴근한건지 옷을 말끔하게 정장차림으로 입고있어서 사람이 엄청 스마트해보였다. 그래서 너 왠일로 멋지게 차려입었냐고 물어보니까 클리닉에서 진료보고 왔다고 대답하는 순간, 아 이 사람은 의사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먼저 들었다. 그래서 너 의사였구나, 어디 파트에서 일하냐 물어보니까 비뇨기과 파트라고 했다. 12월 1일에 싱가폴로 돌아가서 다시 복직할거라고 했다. 그 뒤로 나도 수술실 간호사였고 비뇨기과 수술도 잠깐 참여했었지만 정형외과 파트에서 일을 많이 했다고 영국 간호사 준비 이야기부터 아이엘츠..등등 이런저런 의료적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여태까지 그 사람이 입고있는 옷으로 그 사람을 판단했다는 것에 너무 충격을 먹었다. 싱가폴 남자가 의사라고 하는 순간 그 사람의 음흉하고 나빴던 이미지가 호감으로 순식간에 바뀐 것을 깨달은 나를 발견한 순간, 내가 아직도 얼마나 미성숙하고 형편없는 인간인걸 알게되었다. 여태까지 그 남자가 나에게 보여준 호의과 친절함을 그 사람이 입고있는 후줄근한 옷만 보고 멋대로 그 사람을 기분 나쁜 변태라는 판단을 한 나의 오만함에 너무 실망을 하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눈물이 난다.. 정작 나는 그 사람에 비해 갖고있는 것도 하나도 없고 똑똑하지, 착하지도, 친절하지도 않는데 멋대로 사람의 겉을 보고 판단하고 그레이드를 메기고 있었다. 앞으로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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